<실족할 만한 일을 만날 때> | 김태상 | 2024-09-01 | |||
|
|||||
[성경본문] 요한복음16:1-7절 개역개정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친구가 있으십니까?
예수님으로부터 갑자기‘이제부터 그대들은 나의 친구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예수님께서 갑자기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는 이유가 무엇이 이었을까요? 친구란 동등한 조건에서 맺어져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생과 제자는 동등한 조건이 아닙니다. 분명한 서열이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16절에서 매우 의미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친구가 된 것입니다. 수직구조 속에서는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기 힘듭니다. 예수님이 왕족으로 오셨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장 낮은 자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이 사는 나사렛 동네에 오셔서 인간들이 하는 노동을 하시면서 누구나 다가오기에 부담이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관계성의 가장 편한 친구로 우리들에게 자신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친구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친구로 택해주신 것입니다. 수직관계가 아닌‘수평의 관계’가 될 때 친밀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도와줍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진정한 친구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10:37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친구라고 부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사시면서 단 한 차례도 제자들을 종처럼 부리지 않으셨습니다. 또 제자들이나 그 어떤 사람에게서 주인으로 대접받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친구처럼 대해주셨습니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인맥과 인간관계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세요?
2. 우리가 예수님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