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 | 김태상 | 2024-04-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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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1:33-35절 개역개정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 (강해33)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가정에 방문하여 눈물을 흘리시는데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실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은 나사로가 죽게 될 줄 알고 계셨고, 이렇게 되도록 고의적으로 이틀이나 지체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차피 조금 뒤면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이고, 그러면 저들이 크게 기뻐할 것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먼저는 주님이 감성적이셨다는 것입니다. 감성은 이성을 떠나서 늘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나봅니다. 감성은 이성과 무관하게 자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눈앞에서 나사로의 자매들이 대성통곡을 하며 슬피 우니, 그것을 보시고 감성이 동하여 예수님도 울게 되신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슬픔을 공감해 주셨던 것입니다. 공감은 어려운 이웃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감정이입’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과 함께 느끼는 느낌 즉 ‘feel with’의 감정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3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지금 주님의 눈물은 단순한 연민의 눈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눈물은 믿음 없는 세대를 향한 비통의 눈물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 안타까움은 어쩌면 현재의 우리를 향하여 흘리는 안타까움의 눈물입니다. 교회를 향한, 인류 전체를 향한 간절한 눈물입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주님을 기대하지 못하는 불신앙은 주님을 늘 안타까움으로 눈물 짖게 만듭니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나의 공감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2. 나는 무엇을 위해서 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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