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침묵 속에 담긴 힘 (요 19:1-16) | 김태상 | 2025-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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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9:1-16절 개역개정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침묵 속에 담긴 힘 (강해 56)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향해 저주나 비난의 말을 쏟아내지 않으셨습니다. 이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도덕적 우위와 영적 권위의 표현이었습니다. 침묵함으로써 예수님은 분노와 증오의 순환 고리를 끊으셨고, 용서와 화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셨습니다. 세상은 종종 더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는 사람이 승리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력한 반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침묵은 분노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지는 힘이며, 상대방의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는 영적 성숙함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정당화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침묵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모함을 뒤집어쓰기로 작정하신 분입니다. 침묵은 쉽지 않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거대한 영성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침묵은 할 말이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게 아닙니다. 침묵은 언어의 또 다른 방식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침묵의 영성을 배웁니다.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은 말이 많다', '기독교인 치고 말 못하는 사람은 드물더라', '기독교인은 말만 잘하기 때문에 죽어도 입만 천국에 갈 것이다' 등등 말과 관련짓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말씀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을 잘못 발전시켜 말(word)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강조하려는 의미에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라는 주장이 기독교가 단순히 말에 대한 친근성으로 발전해 결국 '말씀'은 없고 '말'만 무성한 종교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해야 권위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함으로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본래 모든 말에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침묵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신앙양심과 현실과의 타협 속에서 갈등한 경험이 있나요?
2. 침묵함으로 승리한 경험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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